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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여행! 파묵칼레 & 히에라폴리스, 신비하고 신성한 신들의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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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여행! 파묵칼레 & 히에라폴리스, 신비하고 신성한 신들의 산책길
  • 김관수 기자
  • 승인 2024.03.15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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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신성한 도시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김관수의 여행 버킷리스트

[투어코리아=김관수 기자] 파묵칼레와 함께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겸한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히에라폴리스의 역사는 무려 기원전 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페르가뭄 왕조의 유메네스 2세가 도시를 최초로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족의 이름을 따서 도시의 이름을 짓던 당시의 관례에 따라 페르가뭄 왕조의 창시자인 텔레포스의 부인 히에라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기원전 129년 경 부터 로마에 귀속되며 본격적으로 역사서에 그 이름을 남기기 시작했고, 이곳에서 발견된 명문에는 양모 산업 조합과 염색업, 직물업 카페트 제조업, 못 제조업, 구리 세공업 등과 관련된 내용들이 쓰여 있어 과거 이곳 사람들의 생활을 짐작케 한다. 2세기와 3세기 히에라폴리스는 최전성기를 맞이했으며 유대 사회의 등장과 함께 기독교가 빠르게 전파됐다. 이후 12세기 십자군과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히에라폴리스는 급속히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1219년 일어난 대지진으로 인해 사람들이 떠나고 도시는 황폐화되어 더 이상 복구되지 못했다.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 히에라폴리스 유적(사진. 김관수)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 히에라폴리스 유적(사진. 김관수)

비잔틴 시대의 학자 스테파누스는 ‘신성한 도시’라는 의미를 지닌 ‘히에라폴리스’ 라는 이름이 당시 고대 도시를 지키던 수많은 사원들로 인해 붙여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파묵칼레와 함께 히에라폴리스를 거닐며 조금 다른 상상을 해본다. ‘온천이 샘솟고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진귀한 풍경을 품은 파묵칼레가 있기에 히에라폴리스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아닐까?’ 2천 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지만 당시의 사람들도 그 풍경을 음미하며 따뜻한 천연온천을 마음껏 즐기고 싶었을 테니 말이다.

폐허나 다름없는 곳이지만 때문에 더욱 빛나는 풍경을 밟으며 가이드가 전하는 아주 먼 과거의 이야기들을 듣는다. 지금껏 사라지지 않고 버텨온 이 도시의 모든 존재들이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이다. 본래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던 그렇지 못하던, 작은 돌덩이 하나 마저도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생김새만 봐도 그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누군가 꼼꼼히 새겨 넣은 글자들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전한다. 고대 도시를 거닐며 알게 된 히에라폴리스의 이야기들이 있어 파묵칼레 여행은 조금 더 풍성해진다.

신성한 도시라 불렸던 히에라폴리스 (사진. 김관수)
신성한 도시라 불렸던 히에라폴리스 (사진. 김관수)

히에라폴리스, 놓치지 말아야할 유적들

히에라폴리스에 남아 있는 유적들은 최초 도시가 건설됐던 헬레니즘 시대의 것이 아닌 전부 로마시대의 유산들이다. 동서로 길게 직사각형 형태로 세워진 도시에는 아쉽게도 토대만 남아 있는 아폴로신전과 플루토니움, 기념 분수, 극장, 온천 수원지인 도미티안게이트, 승리의문, 비잔틴게이트, 목욕탕, 우물, 교회, 무덤군인 네크로폴리스 그리고 사도 빌립의 교회이자 무덤 등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네크로폴리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고대 묘지이다. 무려 31만평에 달하는 거대한 무덤군으로 다양한 형태를 띤 수천 개의 무덤이 산재해 있다. 석관 뚜껑에 새겨진 부조물을 통해 죽은 자가 어디서 왔는지 짐작할 수 있는 석관 형태의 무덤, 몇 구의 시신이 함께 매장되어 가족의 묘로 추정되는 가옥형 무덤, 흙으로 덮는 매장실이 있는 고분 형태의 무덤 등으로 구분된다. 도시가 건설되기 이전부터 파묵칼레의 온천수는 질병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끌었다. 치유가 된 사람들은 다시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갔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어떠했을까. 네크로폴리스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교회 목욕탕

네크로폴리스를 지나 서쪽의 도시 성벽 방향으로 걷다 보면 도로 옆에 우뚝 선 건물이 보인다. 목욕탕이라는 사실이 쉽게 믿겨지지 않는 모습의 이 건물은 ‘교회 목욕탕’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당당한 모습의 교회 목욕탕은 자재로 사용된 돌덩이의 거대함과 무게, 볼트식 지붕과 아치로 인해 로마 건축양식의 강한 힘이 잘 느껴진다. 하지만 수차례의 지진 등으로 인해 상당 부분 파손되어 위태로운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도미티안게이트

교회 목욕탕을 지나 동쪽으로 향하면 나타나는 기념문, 도미티안게이트. 세 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이 문은 로마게이트, 당시 로마에서 파견된 아시아 총독의 이름을 딴 프론티우스게이트로 불리기도 하며, 문 상단에 새겨진 문구를 통해 1세기 후반에 도미티안 황제에 의해 세워졌음이 알려졌다.

사도 빌립 기념 교회

사도 빌립을 기념하기 위해 5세기 전반에 세운 기념교회로 도시 쪽의 신성한 계단을 통해 이곳에 갈 수 있다. 사도 빌립의 노력으로 기독교 사회와 기독교 초기 교회 중의 하나가 최초로 이곳에 세워졌으며, 사도 빌립이 80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에 이 교회 어딘가에 묻힌 것으로 추측된다.

히에라폴리스의 하이라이트 고대 극장 (사진. 김관수)
히에라폴리스의 하이라이트 고대 극장 (사진. 김관수)

고대 극장

히에라폴리스 유적의 하이라이트. 약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비교적 소규모의 고대 원형극장이지만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대리석 부조물들이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언덕에 세워진 이 극장의 둥근 볼트형 지붕과 이치 등은 고대 로마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을 띠고 있으며, 무대 건물 정면에는 인공적이면서 예술적 아름다움이 뛰어난 부조물들이 장식되어 있다. 이 부조물들은 아폴로 신과 연관된 신화를 주제로 만들어졌으며, 굴껍질 모양의 수많은 장식은 아프로디테와 관련된 신화 속 모습과 닮았다. 현대의 무대보다 음향효과가 더욱 뛰어날 정도로 훌륭한 무대를 갖추고 있어 현재도 공연이 이곳에서 열리고 있으며, 많은 예술가들이 무대에 오르길 꿈꾸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파묵칼레 박물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은 2세기에 로마 목욕탕으로 지어졌다. 보존 상태가 매우 뛰어난 건물로 로마 건축의 특성과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고 있다. 현재 유물 진열실로 사용 중인 목욕탕은 3개의 공간인 열탕이 있는 칼다리움, 온실인 테피다리움, 냉실이 프리지다리움으로 구성되었다. 박물관 내에는 히에라폴리스에서 발굴된 유적들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당시의 화려했던 모습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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