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일 오전 인천시 강화도 신미양요(1871년) 격전지 광성보를 찾은 관광객들이 광성돈대에서 조숙자 문화관광해설사로부터 조선 수비대가 미(美) 해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일 때 사용했던 포대에 대한 해설을 듣고 있다.

광성보는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로 천도한 후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이다.

광성돈대는 신미양요 때 파괴됐다가 1977년 포좌 4개소와 포3문을 복원해놨다.
신미양요 때 광성보 전투에서 조선군은 어재연 장군을 중심으로 미해군 육전대(陸戰隊)와 용감히 항전했으나 열세한 무기로 분전하다 포로가 되기를 거부해 몇몇 중상자를 제외하고 전원 순국했다. 신미순의총이 바로 신미양요 때 전사한 용사들을 모신 곳이다.
당시 군사를 이끌던 어재연 장군과 동생 재순, 군관, 사졸 등 53명의 전사자 중 어재연 형제는 충북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안장하고 신원을 알 수 없는 나머지 51명의 시신은 7기의 분묘에 나눠 합장해 그 순절을 기리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호랑이를 사냥하던 포수 출신들로서 용맹함이 뛰어났다고 한다.
이외에도 광성보에는 용두돈대,손돌목돈대, 신미양요순국무명비, 쌍충비각이 1871년 미해군과 치열했던 격전지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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