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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죄부 판매’ 그 후 500년...‘마틴 루터’ 발자취 따라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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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죄부 판매’ 그 후 500년...‘마틴 루터’ 발자취 따라①
  • 조성란 기자
  • 승인 2017.02.15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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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코리아] “절대 권력’은 결국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명제는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16~17세기 중세유럽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행사하던 교황청과 가톨릭교회는 급기야 ‘면죄부’를 판매할 만큼 타락하고 부패했다.

돈이 있으면 용서받아 천국에 갈 수 있고 돈이 없으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 되는 '면죄부'. 이러한 '면죄부 논리’와 “돈도 실력이야” 발언으로 전 국민을 공분케 한 정유라-최순실 모녀가 겹쳐 보이는 건 왜일까.

올해는 1517년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반발, 종교개혁이 시작된 지 500년이 되는 해다. 그 중심에는 마틴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있다. 면죄부 판매가 도화선이 돼 종교개혁을 이끈 역사적인 현장들.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어도 인류, 정치, 철학적인 가치를 돌아볼 수 있어 뜻깊은 여행지다. 종교개혁을 이뤄냈던 500년 전처럼 내일은 오늘부터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떠나보자.

 

종교혁명의 발상지 ‘비텐베르크’

‘루터의 도시(Lutherstadt)’로 불리는 작센안할트주의 ‘비텐베르크(Wittenberg)’는 종교개혁의 발상지다. 마틴 루터가 그의 대부분의 삶을 산 조용한 소도시인 이 곳에서 종교개혁 불씨를 터트리며 역사적인 장소로 급부상했다.

▲ ⓒ독일관광청(gnto)

* 종교개혁 불씨 당긴 ‘비텐베르크 성 교회’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된 곳은 ‘비텐베르크 성 부속 교회(Schlosskirche 슐로스교회)’. 교황청이 성당 증축 경비를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는 것에 반발한 마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교회 현관문에 붙였던 곳이다.

당시 힘없던 시민들의 갈망을 보여주듯 이 반박문은 독일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 나가며 큰 파장을 일으켰고, 독일 뿐 아니라 유럽 전역을 뒤흔들었다. ‘종교개혁’의 사상이 움트고 퍼지기 시작한 이 곳은 이젠 종교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찾는 관광명 소가 됐다.

 

교회에선 마틴 루터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루터가 반 박문을 써 붙였던 ‘나무 문’이 화재로 소실됐는데, 그 자리에 청동 문이 다시 만들어지면서 루터의 반박문이 라틴어로 새겨졌다. 이 문은 관광객들이 꼭 들러 인증 샷을 찍는 곳이다.

또한 교회엔 루터와 그의 개혁 동료 ‘멜랑히톤’이 안장돼 있다.

▲ ⓒ독일관광청(gnto)

우뚝 솟아있는 성당의 첨탑 둘레에는 루터가 작사 작곡한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 ist unser Gott)’가 적혀있다.

비텐베르크 성 교회로 이어지는 길에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길목에 있는 비텐베르크 시청사 앞 광장에도 ‘성격 책을 들고 있는 루터’와 ‘멜랑히톤’ 동상이 세워져 있다.

▲ ⓒ독일관광청(gnto)

 

* 비텐베르크 성모 마리아 교회

루터가 여러 차례 설교했던 시립 교회 ‘성모 마리아 교회(Statdkirche St. Marien 슈타트키르헤)’도 빼놓을 수 없다. 시청이 있는 마르크트 광장 근처에 있는 이 교회는 2개의 첨탑이 우뚝 솟아있어 구시가지의 상징인양 제 존재감을 드러낸다.

 

특히 독일어를 사용해 첫 예배를 한 곳이 바로 이 ‘성모 마리아교회’다. 16~18세기 당시에는 성경이 라틴어로 돼 있어 일반인들은 성경을 읽을 수 없던 시기였다. 이에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 특권층이 아닌 일반인들도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하고, 독일어 예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시민들을 위한 교회’로 기틀을 닦았다.

또한 루터가 처음으로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주는 ‘성만찬의식’을 한 곳도 이 교회가 처음이며, 개신교 목사의 성직 수여식이 최초로 거행됐던 곳도 이 교회다.

이 곳엔 루터의 절친이자 동지였던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LucasCranach)’의 작품들이 다수 전시돼 있는데, 그 중에는 루터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도 만나볼 수 있다.

▲ ⓒ독일관광청(gnto)

 

* 종교개혁사 박물관 ‘루터하우스’

종교개혁을 주도한 루터가 35년 이상 살았던 집은 그 자체로 ‘종교개혁 박물관’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된 루터의 집은 원래 수도원이었던 곳으로, 한때 루터가 수도사로 지냈던 곳이다.

이 수도원은 루터와 그의 부인 카트리나 폰 보라(Katharina von Bora·1499~1552)와 자녀들의 삶의 터전이 됐고, 지금은루터의 삶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박물관으로 거듭나 관광객들을 반긴다.

▲ 아기자기한 소도시 '비텐베르크'

특히 루터의 집은 그의 동료들과 사상을 토론하며 종교개혁의 치열한 열정을 토해냈던 공간으로, ‘그땐 얼마나 치열하고 간절했을까’ 짐작하며 그의 고민과 삶의 흔적을 둘러볼 수 있다.

이곳엔 루카스 크라나흐가 그린 루터와 그의 부인 초상화가 전시돼 있고,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 번역본, 루터의 기도서, 면죄부 판매를 비판한 ‘95개조 반박문’이 적힌 메모, 루터가 입었던 수도복, 교황청에서 루터에게 파문을 경고한 칙서 등 루터와 종교개혁의 관한 모든 것들을 만나볼 수 있다.

▲ ⓒ독일관광청(gnto)

또 집 인근 공터에 교황에게 받은 파문 칙서를 태운 장소에 심은 ‘루터나무’도 만나볼 수 있다.

루터의 집 가까운 곳에 루터의 동지인 ‘멜랑히톤’이 살았던 ‘멜랑히톤하우스(Melanchthon-Haus)’도 함께 들려볼만하다.

이외에도 루터가 교수로 일하며 신학을 공부하고 ‘95개조 반박문’을 세우고 종교개혁을 주도하는 등 루터의 사상이 싹튼 ‘비텐베르크 대학’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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